열 번째 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④ – 하나님을 찾으라 1월 11일(월)
오늘의 말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암 5:4-6)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잡을 것을 잡아야지요. 수영 못하는 사람이 실제로 물에 빠졌을 때에 지푸라기를 잡으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느냐가, 누구를 붙잡느냐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것에 따라서 살길이 열리기도 하고, 죽을 길로 들어서기도 합니다. 현대사회로 올수록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참 많습니다. 아주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불치의 병에 걸려서 고생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렇게 큰 병에 걸리면 좋은 약을 찾고 명의를 찾습니다. 병에 걸렸을 때, 그 병에 효과가 좋은 약을 찾거나, 그 병을 다스릴 줄 아는 아주 훌륭한 의사를 만나게 되면, 그 병을 치료 받고 더 살아가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약과 의사를 만나는 것도 복이지만, 그보다 더 큰 복은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 11절 이하에 보면, 나인성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들어가고 있을 때, 마침 한 과부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어서 관을 들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장례 행렬과 예수님 일행이 만난 것입니다. 장례 행렬에 있는 사람들은 이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청년을 살아나게 했고, 그 성은 놀라움과 기쁨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잘 나오셨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 만나는 복이 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을 통해,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간절히 예수의 이름 부르짖어 예수님 만나는 이 시간이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살 길이 열린다
오늘 본문 6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아멘. 어떤 형편에 있던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살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을 찾는 길이 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점점 타락해서 결국은 멸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왕 때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솔로몬이 왕이던 말미에, 우상숭배를 허용하고, 그 자신도 하나님을 떠남으로 범죄하였고, 결국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지게 되었습니다. 북왕국과 남왕국 모두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각각 멸망을 당하게 되는데, 성경은 이 모든 것이 우상숭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북왕국이 멸망할 즈음에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는 말씀을 단순히 북이스라엘 멸망사 정도로만 여기시고 넘어가면 결단코 안될 것입니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예배의 환경을 많이 바꾸어놓았다고, 벌써 몇 번이나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 어떤 형태의 예배를 드리던지, 그 본질이 굳건하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예배하면 되건만, 그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닌, 나의 편의성으로 옮겨가고, 심지어 하나님만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변질 된다면, 이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 못지않은 위기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9장 13절 말씀입니다. “그리하여도 그 백성이 자기들을 치시는 이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께서 옳은 데로 돌아오라고 그렇게 사랑의 매를 드셔도 도무지 알아먹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 회개하고 돌아오면 살 수 있어! 너 안 망할거야!” 그러나 이스라엘은 결국 망해버렸습니다. 왜요?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삶 속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지요. 여러분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과연 하나님께서 나의 잘못을 지적하시고, 어려움을 겪게 하고 계신다면, 나는 돌이킬만한 믿음의 자세를 갖추고 있습니까?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이것을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복을 받는다
히스기야왕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남유다의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통치하던 시기에, 강대국 앗수르가 남유다를 치러왔습니다. 예루살렘이 포위되고, 앗수르의 공격 한 번이면, 이제 남유다는 잿더미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매어달립니다. 하나님 살려달라고, 하나님 구원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찾으며 기도하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직접 앗수르의 대군을 치십니다. 열왕기하 19장 35절입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아멘.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매어달린 것은 그 때 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죽을 병에 걸렸고, 선지자를 통하여 이제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매어달립니다. 하나님 도와달라고, 하나님 생명을 연장하여 달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 연장해주십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어려움 앞에 계십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나의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멘.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요, 모든 문제의 정답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나아가는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신다
어느 섬유공장의 작업실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만일 실이 헝클어져서 풀수 없을 때, 현장주임에게 도움을 구하시오” 하루는 새로 입사한 여직원이 일을 하다가 그만 실이 헝클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것들을 풀어보려고 혼자서 열심히 낑낑대며 노력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방법을 찾아보았고, 어쨌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보았으나 해결하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상황만 더 악화되어버렸습니다. 그제야 그녀는 현장주임에게 실이 헝클어졌느라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현장주임은 그녀를 보고 물었습니다. “당신은 일이 잘못되기 전에 최선을 다해 보았습니까?” 그러자 그녀는 자신이 최선을 다해 실을 풀어보려하였다고 대답했습니다. 현장주임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지만 왜 당신은 나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현장주임이 묻는 말에 최선을 다하면 풀 수 있을 줄 알았노라고, 열심히 자신이 최선을 다했음을 어필하였습니다. 그 때 현장주임은 냉정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오. 당신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일이 잘못되기 전에 나에게 와서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며 가장 비참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바로 내가 위기 속에 있을 때, 부를 만한 이름이 없다는 현실을 자각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는 여러분들이 부를 만한 이름이 있습니까? 아~! 제가 괜한 것을 물어봤나요? 하나님이 계시지요. 그럼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그 부를 만한 이름을 얼마나 불러보셨습니까? 만약 그 이름을 부르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셨다면, 이 시간 주 앞에 회개하며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르겠노라고, 세상 그 어떤 현실보다, 세상 그 어떠한 소식보다, 당신의 말씀에 귀 기울이겠노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그 어떠한 기댈만한 것보다 더욱 든든하게 서계시는 나의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하며,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깨닫고 체험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